상대론



* 조선 시대의 형벌 "태형"의 모습이다.
  태형을 받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필자의 생각에는 상처 감염이나 근육 손상에 의한 횡문근 융해증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장님이 코끼리의 이곳저곳을 만지면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다고 서로 싸우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우리의 지각 범위는 그리 크지 않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장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지구상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 있고, 각기 다른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며,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산다. 한 인간은 다른 인간과 세상을 다르게 인지하고, 그에 따라 다른 생각을 지닐 수밖에 없다. 마치 어제 먹은 사과와 오늘 먹은 사과의 맛이 다르듯이.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 병구의 지구와 강 사장의 지구는 딴판이었다. 병구의 지구는 알 수 없는 폭력에 의해 고통받는 행성이다. 그러나 외계인 강 사장에게 지구는 자신들이 생체 창조 실험을 벌였던 한 행성에 다름 아닐 뿐이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철거민들에게 철거는 생활터전의 상실이자 강한 자의 약한 자에 대한 폭력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때 당시 수험생들에게 그 문제는 빈곤과 관련한 사회 문제로 논술에 나올 만한 내용에 다름 아니었다. 위정자들의 입장에서 철거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다. 이처럼 한 현상은 보는 사람의 사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한 신문에서 상도동 철거민들에 대한 보도를 했다. 상도동 지역에서 철거민들이 보상을 요구하면서 농성중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기사가 나간 신문의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잔인한 글들이 난무했다. 철거민들을 잡아가두자는 말에서 농성탑에 불질러 버리자는 내용까지 다양했다. 또한 한마디씩 더 붙었는데, 떼쓰면 통하는 사회를 만든 노무현과 김대중을 엄벌하자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세상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이들의 생각도 이러한 다양한 시각 중의 하나이다. 이들의 생각에 깔려 있는 배경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정당하다"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상 소수자는 다수자의 의견에 따라야 하며, 그 의견에 저항한다면 법에 의해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 소설이 떠오른다. 김동인의 "태형"이라는 단편소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며, 주인공의 감옥 생활을 그리고 있다. 좁은 감방, 넘치는 사람. 그 안의 한 노인이 태형 90대 선고를 받는다. 그 노인은 받게 되면 죽을 지도 모르는 형벌에 항소하려 하지만, 주인공을 포함한 감옥 내 사람들은 노인이 태형을 받도록 몰아붙인다. 태형을 받으면서 힘없이 내지르는 노인의 비명을 들으면서 글쓴이는 큰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일제 시대, 소위 말해 "인텔리"였던 글쓴이는 감옥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뉴스와 신문을 보면 수많은 "희생의 강요"가 쏟아지고 있다. 부안 사태, 노동자 파업, 앞에서 말한 철거민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들의 저항을 짓밟을 수 있다. 그리고 폐기물 시설을 건립할 수 있고, 노조활동을 박살낼 수 있고, 판자집을 허문 후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옳은 행동인가? 

  대를 위해 소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위 소설에서 주인공이 노인을 내몰아 태형을 받게 하는 일이나 진배없다. 물론 게시판에 잔인한 글을 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의거한다면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우리의 양심은 말하고 있다. 그른 일이라고.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보여지는 세상을 만들지 않는 이상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꼭 필요하다. 인간의 두뇌가 똑같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고의 멸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관이 자신의 이익만을 정당화하고, 남이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유발하고 정당화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최소한이 양심적인 목소리마저 외면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만을 안겨주는 암적인 존재일 뿐이다.


- 2003년에 작성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약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점점 야만스러워지는 작금의 현실이다.

by 꼬마키릴 | 2009/01/11 15:43 | Old posts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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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 희생의 강요: 용산 철거민 사망 사태에 부쳐
1.* 2003년 12월 12일자 미디어오늘에서 퍼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684) 상도동 철거민들의 농성탑을 경찰이 지켜보고 있다.2003년 경 상도동 철거민의 농성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인터넷 조선일보 기사에 달려 있던 무자비한 댓글에 화가 난 필자는 '상대론'이란 글을 작성한 적이 있었다. 모든 의견......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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