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희생의 강요: 용산 철거민 사망 사태에 부쳐

1.


* 2003년 12월 12일자 미디어오늘에서 퍼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684)
  상도동 철거민들의 농성탑을 경찰이 지켜보고 있다.

2003년 경 상도동 철거민의 농성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인터넷 조선일보 기사에 달려 있던 무자비한 댓글에 화가 난 필자는 '상대론'이란 글을 작성한 적이 있었다. 모든 의견과 생각이 정당화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철거민에 대한 무력 진압을 강력히 지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와 같은 의견은 도덕과 양심이라는 것에 배치된다는 면에서 사회에 암적인 영향을 줄 뿐이라고.

그리고 2008년, 용산 철거민에 대한 경찰의 '군사작전'이 시작되었다. 용산 철거민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25시간 만에 경찰은 물대포를 쏘면서 특공대를 투입했고, 이 과정에서 옥상에 있던 시너에 불이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작전으로 철거민 5명, 전경 1명이 사망하고 양측에서 20여 명이 부상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악화된 여론은 애써 정부와 한나라당이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5년 만에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나 역시 같은 내용의 글을 하나 더 쓸 수밖에 없었다. 


2.


* 조선 시대 태형의 모습이다.
  말이 90대지, 90대를 맞는다고 생각을 해 보시라.
  고등학교 때 빠따맞는 거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일제 시대, 한 인텔리가 있다. 그는 어떤 죄목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 있다. 무더운 여름, 방안에는 약 40여 명 이상의 사람이 좁은 공간에 같이 수감되어 있는 상태. 내부의 모든 사람들은 더위와 갈증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같이 갇혀 있던 한 노인은 공판에서 90대의 태형을 언도받는다.

70대 노인에게 태형 90대는 죽을 지도 모르는 형벌이다. 이 때문에 노인은 항소하려 하지만, 주인공을 포함한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그 노인이 나감으로써 넓어질 자리를 생각하며 노인을 윽박지른다. 결국 노인은 항소를 취하하고, 얼마 안 있어 주인공은 태형을 받으며 힘없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노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목소리에 주인공은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일제 시대 나름 인텔리였다는 주인공은 감옥의 얼마 되지 않는 공간을 위해 한 노인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3.


*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희생은 자발적이었기에 고귀하다.
  하지만 희생의 강요는 고귀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추악하다.

화염병이네 과잉진압이네 등의 말초적인 문제는 접어놓기로 하겠다. 이런 논쟁은 매우 소모적이며 때로는 가치없는 논쟁인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인 것은 말초적인 문제에 대한 논쟁은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문제를 가려놓는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약자들에게 너무도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 도시의 미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노점상들의 집기를 부수고 그들을 폭행한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한미 FTA등 각종 국가들과 FTA를 맺고, 이는 농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도심 개발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철거민들의 집을 파괴하고 그들을 구타하고 내쫓는다.

이런 정부의 모습은 '태형'에서 보인 주인공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의, 그리고 우리의 약간의 편의와 미관을 위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좌절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행동이 국내법 상으로는 정당화될 수 있는 지는 모르지만, 도덕적으로는 약간의 편의를 위해 약자를 해친다는 면에서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다.

슬픈 사실은, 가해자인 정부와 여당의 인물들 중 그 누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태형'의 주인공은 그 노인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라도 했지만, 가해자 중에서 주인공처럼 참회의 눈물을 흘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되잖은 변명으로만 일관할 뿐이다.


ps.



살림, 수출, 취업, 경제의 작은 이득을 위해 농민들은 삶의 좌절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by 꼬마키릴 | 2009/01/22 01:17 | 본격 병맛 한국 비평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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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발마 at 2009/01/22 01:35
맨마지막 FTA광고를 지하철보면서 ....FTA랑 저사람들이 말하는거랑 뭔관련이잇을까 생각해봣는데요. 이유도 같이 적어놔야지 저렇게만 적어놓으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ㅎ
Commented by 꼬마키릴 at 2009/01/22 15:50
FTA 추진위원회의 조급증이 광고 등장인물들의 조급증으로 투사(projection)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ㅎㅎ
Commented by ex딴따라 at 2009/01/22 02:29
살림, 수출, 취업, 경제이득을 위해 농민들을 좌절시키는 것이 불합리한 만큼

농민의 후생을 보장하기 위해 살림, 수출, 취업, 경제이득을 희생시키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유사이래 구조적 실업은 언제나 있어왔스므로 정부의 역할은 구조적 실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변동을 원천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실업이 최대한 효과적으로 흡수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Commented by 꼬마키릴 at 2009/01/22 15:48
좋은 비판 감사합니다. 물론 후자 역시 불합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의견은 경제이득을 추구하면서 농민의 좌절이라는 구조적 실업을 효과적으로 흡수시켜야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겠군요. 이렇게 현 정부가 움직인다면 FTA, 나쁘진 않겠죠. 하지만 FTA를 위한 현 정부의 농촌 대책이 전무하다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추구하는 FTA는 앞에서 언급했던 희생의 강요에 다름 아닐 수 있다는 것이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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