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놈' 얼굴은... - 강 모 씨의 신원 공개에 대해

주의: 이 글은 뒷북글이오니 잘 생각 안나시는 분은 링크를 읽어보세요.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31/2009013100001.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topheadline&Dep3=top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군포시에서 발생한 부녀자 대상 연쇄살인 용의자 강 모 씨의 얼굴과 매우 자세한 신상명세를 앞다투어 공개했다. 조선일보는 이에 덧붙여 다른 글도 실었는데, 바로 반인륜적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국제적 추세이며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논지의 글이었다. (위 링크에 있으니 잘 찾아보시라) 신문에서 터뜨려버리자 각종 방송사도 질 수 없다는 듯 강 모 씨의 얼굴과 신상명세를 공개했고, 이는 범죄자의 신상 명세 공개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범죄자의 신상명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범죄의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의 필요성을 든다. (조선일보 사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1/2009020100791.html )(주 1) 하지만 흉악범이라고 해도 현재는 용의자의 단계이기 때문에 범인이라고 결론짓고 얼굴까지 공개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신상명세의 공개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이들을 통해 우리 결점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으며 이는 최소한 알 수 없는 찝찝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으니까.


1.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여기 나오는 것처럼 범죄를 사전 예측해 차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얻는 첫번째 효과로 제시되는 것은 범죄 예방이다. 어떻게 범죄가 예방되는 것일까. 이를 요약한다면 "쪽팔림 효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얼굴이 공개됨으로 인해 흉악범 뿐만 아니라 그와 연계된 사회적 관계의 피해 때문에 범행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면, 국내에서 최근 추진되었던 성범죄자 신상명세 공개를 들 수 있겠다. 일견 들어 보았을 때 이 말이 맞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소위 '사이코패스', 또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연결된 사회적 관계를 얼마나 고려할 지는 미지수이다. (주 2) 또한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 법령을 시행했던 미국에서조차 이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예방 효과가 실제로 있는지 조차도 미지수이다. (참고자료: http://news.empas.com/show.tsp/cp_oh/20080423n18300/)


2.

공개처형. 삼국지에서는 동탁이 연회를 베풀다가 무고한 한 관리를 지명해 그를 처형하고 그의 목을 술자리에 들여와 관리들에게 엄포를 놓았던 일이 나온다. 21세기에도 북한이나 중국 등의 공산국가에서는 공개처형이 이루어진다. 대개는 정치범이나 그 체제를 이탈하려 하는 자 (예를 들자면 탈북자)에 대해 이루어지며 중국 같은 곳에서는 이들의 장기가 장기 이식에 이용된다는 확인되지 않은 설도 있다. (주 3) 어쨌든 국가는 공개처형이라는 것을 통해 공포를 통한 사회구성원의 결집을 노린다. 나의 칼에 무릎꿇지 않으면 너의 목이 날아가리라. 이 공식을 현실화함으로써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굴복시키고 자신의 지위를 강화한다.

그렇다면 당하는 구성원은 어떨까. 구성원이 권력에 대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에게 공개처형은 공포의 대상임과 동시에 저항해야 할 대상이다. 그리고 구성원이 그 공포에 무감각해졌을 때 구성원은 공개처형에 마다하지 않고 국가와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주 4) 마치 삼국지의 왕윤이 연환계로 동탁을 죽이듯.

하지만, 구성원이 권력을 정당하게 여긴다면, 또는 처형의 이유가 대중의 상식에 의해 인정받는다면 공개처형 역시 정당화되고, 공개처형은 대중의 심리적 불만를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black festival과 같이 작용하게 된다. 권력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찍힌 처형 대상은 구성원의 분노를 한몸에 받게 되고, 이는 처형 대상 뿐만 아니라 그와 관계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마치 태백산맥에서 염상진(빨치산이다)의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길거리에서 괄시받듯.

영화 "향수"에 나오는 Black festival. 소녀 12명(소설은 25명)을 살해한 그르누이의 사형 장면이다.
물론 주인공은 영화 끝날 때까지 죽지 않으며 주인공 죽이려던 사람들은 대개 주인공에게 캐발리기 마련이다.


3.

당시 우리 사회는 어땠을까. 우리의 언론들은 그의 이름과 신상명세를 계속 뒷조사해 언급하여 그를 점점 구체화했다. 고향은 어디, 결혼은 몇번했고 자식은 몇명 있으며 직업은 어떠했다는 이야기까지. 그 대상이 구체화되면 분노도 구체화되므로 black festival의 제물이 되기에 매우 좋다. 물론 이 때문에 친족들이 겪는 splash damage는 안중에도 없다.

다른 기자들은 그 정의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사이코패스"라는 범죄심리학 용어를 아는 척 하면서 계속해서 언급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사람이 우리 주위에 있다는 두려움을 전파했고, 그들의 특성 중 하나인 "죄의식없음"을 잘못 이해한 채 이를 노골적인 비난의 도구로도 이용했다. (주 5) 이에 호응해 대중은 그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각종 어중이 떠중이식 출판물들을 읽으며 입과 손(키보드)으로 강 모 씨 짓밟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언론과 경찰이 언급하는 강력한 처벌들에 대해 열심히 찬성표를 던졌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사이코패스를 "뻔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이 사람은 사이코패스에 대해 잘 모른다. 그냥 욕하려고 끌어다 쓴 것일 뿐이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청와대에서는 강 모 씨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당시 발생한 용산 철거민 과잉진압 사태의 비난을 덮으라는 언론플레이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가 이 사건을 정치적 이득을 위한 소위 "떡밥"으로 사용했다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사회가 언론플레이에 놀아나 강 모 씨를 제물로 한 차례 black festival을 치루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얼마나 추잡하든 간에 그것-black festival-은 우리가 얻은 한 가지일 것이다.

잃은 것은 무엇일까. 용산 참사, 범죄자의 인권 등 이런 것도 있겠지만 필자는 다른 것을 말하고 싶다. 정부는 사회 갈등에 대해 직면하려 하지 않았고 해결책을 고심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black festival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함으로써 그들은 갈등과 충돌을 유예했다. 이는 사회 갈등 해결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주 6)

한 가지 더 말한다면-이는 매우 감성적인 이야기이지만-우리는 범죄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거의 관심이 없다. 일부 사람들은 언론의 잘못된 정의에 호도되어 "사이코패스"를 타고난 기질, 일종의 유전병으로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이코패스는 "만들어진다". 실제로 존재한다고 추측되나 잘 밝혀지지 않은 일종의 생물학적 기질에 가족관계 등 사회병리적 요소가 추가되어야 질환으로서 발현된다. 즉 사회병리적 요소를 제거한다면 예방도 가능하며 치유도 가능하다. 물론 매우 어렵겠지만.

물론 그들은 누군가의 말대로 죽어 마땅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평생 불행했던 삶에서 한 줄기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조금 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 사회는-심지어 종교인들조차-그들을 경멸하고 무시할 뿐, 그들의 손을 잡아주려 하지 않는다.


4.

공지영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연쇄살인범 강 모 씨의 블루노트를 받아 줄 사람, 과연 있을까?


최근 뉴스에서 강 모 씨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판결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저지른 그 엄청난 죄를 그의 목숨 하나만으로도 갚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형이 되었든 종신형이 되었든 그가 마지막 순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으면 하는 헛될 지도 모르는 소망을 가지며 이 글을 맺는다.



주)
1. 언제나 법원칙을 강조하던 조선일보가 법원칙까지 위반하면서 사설을 통해 거품까지 무는 것은 참으로 의외이다. 또한 언제나 폭로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대의를 제시하는데 그것이 자신만의 생각인지 정말 국민의 생각인지 최소한 귀납적 증명이라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필자에게는 있다.

2. 실제로 반사회성 인격장애자의 상당수는 사기에 능수능란하다.

3.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간이식병동에 있을 때 간이식을 위해 중국으로 전원갔던 한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4. 이문열 씨의 생각이다. (참조: 이문열 평역 "삼국지")

5. 안타깝게도 이는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나 마찬가지였다.

6. 지금도 그렇지만, 현 정부의 갈등 해결 방식은 딱 두 가지이다. 유예와 강행.

by 꼬마키릴 | 2009/08/06 01:46 | 본격 병맛 한국 비평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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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8/06 02: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꼬마키릴 at 2009/08/06 10:57
음 그런게 정말 있다면 끔찍하네요...;;
물론 조선일보라서 믿기는 조금 힘들지만 말이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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