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한 소녀의 죽음에 부쳐

1.



* 아름다운 동작대교의 야경. (From; Juli97님의 블로그 http://juli97.tistory.com)
  하지만 한강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아름답지 않다.
  고되고 힘든 삶과 그로 인한 좌절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
  그들의 눈물, 그들의 육신과 생명을 삼키는
  어찌 말하면 "악마와 같은" 모습이 그 이면에 있다.



"얼마전 한 소녀가 한강다리에서 투신했습니다.
홀로 서울로 상경해 패밀리레스토랑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던 그녀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 8월 1일 투신자살했습니다.
다음 단신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다.
여러분은 이런 뉴스에 익숙한가?


2.

자살은 죄악인가?

기독교(와 그 계열)에서는 자살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으로 본다.
모세가 하느님께 받았다는 십계명의 제 5항 "살인하지 말라"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것이다.
(자기도 사람이고 자살은 자신을 죽이는 행위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적으로 자살은 엄격히 금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생을 고해(苦海)라고 말하는 불교에서도 자살은 그리 좋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뭐 어떤 종교든 간에 누가 자살을 권장하겠는가)

하지만 성현의 가르침과는 달리
자살은 점점 우리 곁에서 친숙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는 그 무엇이다.
2007년 통계에서 자살은 우리 나라 사람의 사망 원인 중 5위를 차지하였고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 나라 여성의 사망 원인 중 3위가 자살이었다. (남성은 4위다.)
(뇌혈관질환, 허혈성 심장질환에 이어서 3위란다. 폐암, 위암보다 높은 순위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유명인들도 그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유명하고 impact가 큰 사례였고
그 다음으로 고 최진실 씨와 고 박용하 씨, 고 장자연 씨 등...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자살은 점점 우리에게
힘든 현실의 극단적인 탈출구로서 다가오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경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3.

"다른 사람의 슬픔을 느끼면 당신이 죽소."

- 이영도 作,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동체의 짐을 떠맡는데는 매우 익숙하다.
우리나라의 일에 다같이 슬픔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3.1운동 때 수많은 사람들이 총칼을 무릅쓰고 만세를 외쳤고
일본이나 북한의 도발에 자기 일처럼 흥분하며 그들을 비난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공동체가 아닌, 타인과는 감정을 나누지 못한다.
(여기서 타인이란 "공동체 외부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로 치환시켜 스스로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역지사지는 이미 우리에게는 먼지쌓인 책에서나 찾아볼 법한 무가치한 경어가 되었다.
철거민들과 노점상인들, 성적 소수자, 외국인노동자 등등...
이들이 얼마나 힘겹게 삶을 이끌어나가는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곧이어 뉴스에서 나오는 그들의 힘겨운 국소적 저항 소식과
그에 대해 "저런 공권력에 저항하는 나쁜 놈들"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인터넷의 "저사람들 원래는 잘사는 귀족들이다"라는 출처 불명의 댓글까지 이어지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그들을 "쓰레기 or 범죄자 or 파렴치한" 등등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들이 어떤 슬픔에 못이겨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그들이 왜 벼랑끝에 몰려 저항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위에도 썼듯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느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서로 적대적 관계일 때 해당하는 말이지
서로의 어깨를 잡아줄 수 있는 관계에서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신시대를 살고
여전히 서로 적대적 or 적이라고 의심하며 경계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른 사람을 짓밟고 홀로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4.

"왜 이해할 수는 없을까? 입장을 바꿀 수는 없을까?
길지 않은 생, 가슴에 피비린내를 풍기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의 서로 다른 겉모습은 광적인 증오의 원인이 아니라 다시 없이 커다란 축복이 아닐까?"

- 이영도 作,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



동작대교 위에서 자신의 삶을 포기했던 한 소녀의 사연은
결국 미디어의 단신(短信)으로 사라져갔다.
그녀의 힘든 삶에 공감한 몇몇 사람들의 푸념만이 인터넷 상에 남았을 뿐.
(그녀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며 그들을 소리높여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의 눈물과 생명을 삼킨 한강은 오늘도 조용히 흘러가고
그녀의 눈물과 생명을 삼킨 우리나라는 아무 일 없는 듯이 잘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힘겨운 삶을. 그들의 눈물을.
그리고 그 모습에 우리 자신을 투영해야 한다.


그렇게 되는 것.
우리가 서로의 어깨를 잡아주는 것.
그것이 세상의 냉엄한 발톱에 저항하는 우리의 마지막 방법이 아닐까?



<더 읽어볼 거리: http://www.amnestydiary.net/392>

by 꼬마키릴 | 2010/08/05 11:28 | 본격 병맛 한국 비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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