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감상문

1.

영화 '국제시장'이 9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미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화는 개봉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고공행진을 계속해오고 있다. 물론 제작사 및 배급사가 CJ계열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럼에도 이와 같은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데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에 기반한 것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영화는 6.25 전쟁 (한국전쟁) 도중 흥남철수에서 가족과 헤어진 '덕수'라는 사람을 조명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서독 광부 파견,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사건을 거치면서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영화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발전 과정에서 힘든 현실을 살아온 우리 아버지 및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서 조명한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소위 '압축성장'의 주체를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명령 하에 백성을 이끈 정부로 설정하였고, 그 아래에서 온갖 부당한 대우에 신음하며 살아왔던 우리 아버지 및 할아버지들은 제대로 조명하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인 "이만하면 나는 잘 살았다. 그러나 정말 힘들었다."는 주인공의 말은 지금 우리나라를 발전시킨 주체가 박정희가 아닌, 아버지 및 할아버지 세대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비록 암시뿐일지라도 '덕수'를 우리가 지금 있게 한 주체로서 설정한 것은 일견 긍정적인 면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이 '덕수'라고 하는 캐릭터는 뭔가 바람이 절반 정도밖에 들어있지 않은 풍선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부부싸움 중에서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변인들의 눈치를 받아야 하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우리 아버지 세대는 민주 정권을 쟁취해 내었으며, 이는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상태였던 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이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엄혹한 현실에서도 좀 더 나은 정치, 경제, 및 사회적 현실을 얻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덕수'는 좀 더 나은 경제적 현실을 얻기 위한 노력에만 몰두할 뿐, 이 캐릭터에서 당시의 정치 및 사회에 대한 현실은 완전히 거세되어 찾아보기 어렵다. '덕수'의 유일한 비경제적 노력은 북에서 생이별한 가족을 만나기 위한 노력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 수십년 간의 군사정권을 거쳐 현재 민주정권을 이루어 낸 일은 매우 놀라운 일이며, 어느 국가에 대해서든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 역사를 달가워하지 않으며, 특히나 군사정권 수장의 따님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역사는 말할 때 마다 괜시리 불편한 역사가 되어버렸다. 이런 점에서 감독은 정치 및 사회적 현실의 발전에 대한 조명은 철저히 피한 것으로 생각되며, 결과적으로 '덕수'라는 반쪽짜리 캐릭터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2.

청년은 미래를 말하고
중년은 현재를 말하고
노인은 왕년을 말한다

- 술집 풍경, 조남준의 발그림

영화의 막바지에서 '덕수'는 윤제균 감독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 2). 감독은 지금 관점에서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에 불과한 '덕수'의 이야기로 일견 아버지 세대의 힘겨웠던 현실을 조명한 것은 관객이 '덕수'의 고생스러운 현실을 통해 아버지 세대를 이해해 달라는 의도를 보여준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의도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 영화는 '덕수'가 겪어 온 힘든 현실에 과도하게 집착하였으며, 이 스토리 텔링은 마치 술집에서 어르신들이 한잔 걸치고 왕년에 대한 소고를 하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극단적으로, 굵직한 현대사에 대한 사건들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긍정왕 덕수 할배의 왕년 이야기라는 한 마디로 요악 가능하다. 이 이야기를 윤제균 감독 특유의 신파적 연출로 포장해 눈물과 감동을 유발하였으나,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덕수'의 무엇을 이해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극중에서 김윤진이 말하듯 왜 당신의 인생은 없었는지, 이런 삶을 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이에 대한 '덕수'의 대답은 영화에서 쉽게 찾기 어려웠고. 영화가 끝날 때 쯤 해서야 '덕수의 아버지'라는, 두루뭉실한 대답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의 의도는 '덕수'를 '고집불통 할아버지'에서 '살아있는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생각해 달라는 것이지만, 내가 보는 '덕수'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에서 '과거에 박제된 고집불통 할아버지' 수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나마 엔딩에서 가게를 처분함으로써 '덕수'의 심적 변화를 드러내려는 장치를 보여주었으나, 이를 통해 '덕수'를 다시 평가하기에는 너무도 미약하였다.


3.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주 2의 인터뷰에서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똑같이 힘들게 살아온 아버지 세대들이 삶이 전쟁터나 다름없는 자식 세대들의 고충을 이해해 줄 것이다"는 의도의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덕수'의 "내는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풍파를 우리 자식들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기 참 다행이라꼬"라는 대사는 감독의 의도와 상당히 상반되는데, 이 대사를 통해 '덕수'가 젊은이들을 고생도 모르고 편한 세상 살아온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덕수'가 여전히 자식 세대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대사라 하겠으며, 이 영화가 감독이 인터뷰에서 드러낸 의도와는 달리 캐릭터도 의도도 모두 반쪽짜리에 불과한 영화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겠다.

현재 자식 세대들의 삶은 어떠한가? '덕수'의 생각대로라면 지금 자식 세대들은 고생이라고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유토피아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학생들의 행복도는 순위권안에 들 정도로 낮은 나라가 한국이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도 살인적인 등록금 마련에 학자금 대출 및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나라가 또한 한국이며, 운좋게 취업해서도 고용 불안에 떨어야 하는 나라가 또한 한국이다. 이 때문에 '삼포 세대', 더 심하게는 '사포 세대'라는 말까지 생겨나 이 현상이 몇몇 운나쁜 사람들의 증례 보고가 아닌, 사회의 전반적인 트렌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도약하기 어려운 희망없는 현실에 대해 기성 세대는 '우리 때는 더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는 말로 도전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힐난한다. 이는 일견 위 '덕수'의 대사와 상통하며,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지금 기성 세대의 소위 '아픔 배틀'에 매몰되어 자식 세대의 아우성에 귀를 닫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주 3).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대간의 이해와 소통이 가능하려면 세대 간의 고충과 불만을 서로 듣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고충과 불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반대의 목소리, 자식 세대의 고충과 불만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있으며, 오히려 몰이해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도 윤제균 감독이 자신의 의도를 충족하려면 영화를 한편 더 제작해야 하지 않을까.


4.

영화 '국제시장'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버지 세대가 우리 현실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을 '덕수'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 노력에서 민감한 소재인 정치, 사회적 부분은 '통편집'되었고, '덕수'의 고생에 집착한 스토리텔링은 '덕수'의 지금까지의 삶을 '과거에 박제된 고집불통 늙은이'로 만들어버렸으며, '덕수'의 '힘든 풍파를 우리가 겪은게 다행이다'라는 대사는 지나치게 '덕수'의 고생 및 희생을 강조해 세대간의 몰이해를 드러내버린 최악의 대사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이 영화는 겉으로는 잘 만들어진 감동물로 보이지만, 기성세대의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를 자식세대에 강요하는 반쪽짜리 영화에 불과하다.

허지웅 씨가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트위터에 하면서 보수언론들의 비판이 줄을 이었고, 진중권 씨는 이에 대해 '국제시장 비판하면 부모의 은공도 모르는 빨갱이가 되는 거냐'는 언급을 해 보수언론의 마녀사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이 영화는 좋은 점도 찾아볼 수 있지만 좋지 않은 점도 상당히 많은 영화임에도 이 영화를 비판한다고 해서 배은망덕한 좌파인사라고 낙인을 찍고 비난을 일삼는 일은, 기성세대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몸집을 키워가고만 있는 좌우 진영간의 갈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다. 과연 '덕수'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진영갈등도 자신이 초래한 현실일진대...



주.


* 오늘의 유머에도 업로드되어 있음

by 꼬마키릴 | 2015/01/11 17:07 | 심각한글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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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15/01/11 17:23
일단 밸리를 잘못 올리신거 같습니다. 여기는 영화밸리가 아니니...
Commented by 꼬마키릴 at 2015/01/12 00:50
수정했습니다
Commented by ㅇㅅㅇ at 2015/01/11 19:04
영화는 그냥 영화로 보세요... 이렇게 거품무는거 보니 여간 그쪽 성향에서 싫어하는게 맞긴 하는듯
Commented by 꼬마키릴 at 2015/01/12 00:53
시대상을 그린 영화인데 어떻게 영화를 영화로만 보겠습니까...그리고 별로 거품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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